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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교의 정체성: 세례 (Alvin Schm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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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역은 세례 요한의 세례로 시작되었지만(마가복음 1:9~11), 세례 의식은 예수님이 사역을 마치실 때,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실 때까지 공식적으로 제정되지 않았습니다(마태복음 28:19). 이 문장은 지금도 세례 의식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례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염두해 두고,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세례는 단순한 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명령과 그의 말씀에 연관된 물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세례는 유아를 포함하여 개인이 교회에 들어가는 입문 의식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루터교 신자들이 견진 수업에서 배웠듯이 성령이 말씀을 물과 연결시키고 믿음을 창조하는 은총의 수단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유아 세례를 받을 때처럼 말이죠. 여기에 바울의 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6-27). 


교회 초기부터 기독교인들은 세례에 유아와 어린아이들이 포함된다고 믿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루디아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16:15). 그리고 그 시대의 가정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하인과 자녀 포함), 그녀의 가정에는 어린 아이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린도전서 1:16에서 바울은 또한 온 집안에 세례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루터가 “유아 세례는 옳고 … 그로 말미암아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기독교세계로 영접받는다”고 말한 것은 초대 교회의 설명과 맥을 같이 합니다. 루터가 “사도들은 온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말한 것은 루디아와 스테바나를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500년의 기간 동안 종교개혁 시대까지 유아세례가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 15세기 동안 저명한 이단자조차도 유아세례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유아세례에 대한 첫 번째 주목할만한 거부는 재세례파의 등장과 함께 1520년대에 발생했으며, 그 이후로 이 잘못된 가르침은 많은 개신교 교파(예: 침례교, 오순절, 그리스도의 제자, 메노나이트)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은혜의 수단으로서 세례는 하나님의 용서의 도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지 50일 후인 교회의 첫 오순절에 그의 설교에서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의미한 것입니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사도행전 2:38) 비슷한 방식으로 바울은 극적인 회심 직후에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22:16)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그의 동료인 디도에게 세례가 “중생의 씻음”(디도서 3:5)이라고 확신시켰습니다. 이 성경적 증거를 감안할 때 루터교는 “세례적 중생”(baptismal regeneration)을 믿고 가르치고 고백합니다. 이는 세례가 죄를 용서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을 거듭나게 하는 은혜의 수단임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죄를 용서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을 거듭나게 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죄 용서는 일회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매일 자신의 죄가 용서됨을 약속하시는 신성한 약속입니다. 사실은 우리는 매일 여러 번 용서됩니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세례의 물 속에 죄악된 본성을 익사시키는 세례의 은혜 안에서 삽니다. 마치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과 같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3-4). 루터교 그리스도인들은 매일매일 이 말씀을 기억합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우울하거나 낙담할 때 이 세례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는 영적 갱신을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믿고 회개한 모든 세례받은 기독교인의 죄를 용서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많은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특히 스스로를 침례교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문화에서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많은 다른 개신교 교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그룹들은 사도행전 2:38, 22:16, 그리고 위에 인용한 디도서 3:5에서 분명히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선물을 거부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은 남침례교의 입장을 묘사하는 공식 성명서입니다. “기독교 침례는 신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 행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묻히고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상징입니다.” 이 진술에는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이 죄 용서를 받는 은혜의 수단으로서 침례에 대한 언급이 없음에 유의하십시오. 따라서 남침례교는 세례의 중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침례는 단지 누군가가 기독교인임을 상징합니다. 물론 세례에 대한 이러한 특별한 이해는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루터교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례에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을 결코 잊어버리거나 심지어 최소화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도록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썼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에베소서 5:25-26). 베드로 사도의 말도 이와 유사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베드로전서 3:21). 또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쓴 확신과 위로의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입니다(고린도전 6:11).


마지막으로 우리 루터교인들은 또한 긴급 세례(Emergency Baptism)의 중요성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유아나 세례 받지 않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평신도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관행은 적어도 스페인의 엘비라 시노드(Synod of Elvira, AD 305 또는 306)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Canon 38에서 이 총회는 평신도 기독교인이 죽음의 시점에 있는 유아나 예비 신자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한 세례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로 행할 때 그것이 참으로 유효한 세례입니다. 대부분의 비루터교 개신교 교단은 긴급 세례를 시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세례가 믿음과 죄의 용서를 주는 은혜의 수단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출처: Alvin Schmidt, Hallmarks of Lutheran Identity. Concordia Publishing House, 2017, 13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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